한자 의미는 不安이다. 不(아닐 불) + 安(편안할 안). 글자 그대로 “편안하지 않음”이라는 뜻.
불편과는 뭐가 다를까. 나는 직관성의 차이라 본다. 불편한 것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. 불안한 것의 원인은 내부에 있다. 나의 마음이다. 그리하여 모호하다 할 수 있다. 쉬이 해결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. 시원치 않다. 잘 다스려야 하는 것.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과는 다른 것. 나를 타일러야 하는 듯하다.
다시 내가 이 감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. 나는 쉽게 불안해한다. 불안도 더 쪼개볼 수 있을 듯하다. 앞서 말했듯 불안은 내부에서 시작된다. 그럼에도 그 원인의 비율이 외부에 더 쏠려 있는 것들이 있다. 나는 이 편인 듯하다. 나의 불안의 원인은 늘 명시적이라 할 수 있다. 발표를 앞두고, 투자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, 증명하고 싶어,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다. 늘 남의 시선에 의해 나의 불안이 형성된다. 남들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, 증명하고 싶어서.
오늘은 이 불안을 더 깊게 생각해보자. 원인이 외부라고 했지만, 그 외부를 만드는 건 나다. 아무것도 안 하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내부의 전제가 먼저 있고, 그 전제가 직접 나를 때리는 대신 외부로 우회한다. 선언하고, 시선을 만들고, 그 시선이 압박이 되고, 압박이 불안이 되고, 불안이 실행이 된다. 내부에서 출발해서 외부를 경유해서 다시 내부로 돌아오는 루프다.
왜 이렇게 우회하는가. 생각해보면, “나는 한심하다”를 직접 연료로 쓰면 자기 혐오가 된다. 혐오는 마비를 만들지 추진력을 만들지 않는다. 그래서 나는 그 판단을 타인의 시선이라는 형태로 한 번 세탁해서 다시 받아들이는 듯하다. 자기 혐오를 사회적 긴장감으로 바꾸는 것이다. 꽤 정교한 자기 보호 메커니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. 의식한 적은 없지만.
그리고 이 루프가 끊기지 않는 이유가 있다. 실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. 불안이 끝나고 나면 성장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. 힘들었지만 결국 해냈다는 기억이 쌓이고, 그 기억이 다음번 불안을 정당화한다. 고통의 자기 합리화 회로가 완성된 상태다.
문제는 빈도와 깊이다. 이 루프는 원래 비상용이었을 것이다. 중요한 발표, 큰 결정, 진짜 증명이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쓰는 부스터. 그런데 어느새 이게 기본 모드가 되어 있다. 매번 불안을 통과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. 부스터가 메인 엔진이 되었다. 부스터를 메인 엔진으로 돌리면 출력은 나온다. 기체가 버티질 못할 뿐이다.
이젠 좀 지친다는 것도 안다. 이건 루프가 깨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비용이 산출을 따라잡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본다. 전에는 불안 100을 태우면 성장 120이 나왔는데, 지금은 불안 100을 태워도 80밖에 안 나오는 느낌. 연료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.
루프를 끊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. 이 루프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건 사실이니까. 다만 불안 없이도 손이 움직였던 순간이 있었는지는 돌아볼 만하다. 증명이 아니라 순수하게 재밌어서, 궁금해서, 해보고 싶어서 먼저 움직였던 순간. 그게 있다면 그게 다른 엔진의 씨앗일 수 있다. 불안을 없애는 게 아니라, 불안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하나 더 갖추는 것. 부스터는 부스터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.
April 2, 2026